날이 무척 쌀쌀해져도, 밀양의 햇살은 여전히 따스합니다. 지난 10월 20일은 밀양은대학 생태미식학과의 마지막 수업이자,지금까지의 여정을 한 끼의 식탁으로 완성하는 날이었습니다. 1시 반 즈음, 벗님들이 도착하면서 테이블 위에는 밀양의 계절을 닮은 재료들이 하나씩 놓이기 시작했어요. 초록빛 가득한 깻잎, 은은한 향이 나는 표고버섯, 땅의 기운을 머금은 듯한 당근, 화도쌀의 윤기, 대추의 붉은빛... 밀양에서 나고 자란 식재료가 한눈에 들어왔답니다.
각 조는 지난 회차 동안 구상했던 로컬 플레이트를 직접 손으로 구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많은 인원이 동시에 요리를 하는 거라 혹여나 동선이 너무 복잡하진 않을까, 고민이 되었는데… 벗님들의 엄청난 속도와 내공에 오히려 저희가 많이 배웠답니다. 보글보글 대추차를 끓이는 소리, 들기름의 고소한 향, 채소를 써는 소리...벗님들의 요리하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합주처럼 느껴졌던 거 같아요.
입학식 날, 어떤 플레이트를 만들어야 하나 막연해하는 모습에서 각자의 의미와 이야기를 더한 플레이트를 완성해 가는 확신에 찬 모습이 교차하는 듯 보였습니다.
❶ 밀양 여행자들을 위한 로컬푸드 도시락
1조는 여행자의 도시락을 만들었어요. 귀도·하도·진안도 세 지역의 쌀로 빚은 작은 주먹밥에, 깻잎 시오즈케와 표고 들기름볶음을 곁들였습니다. “슴슴한 간이 오히려 재료의 맛을 살려준다”는 어느 벗님의 말처럼, 1조의 도시락은 낯선 여행자에게 건네는 ‘밀양의 마음 한 조각’ 같은 플레이트였어요.
❷ 밀양살아보기전
2조는 <밀양살아보기전>이라는 이름으로 단감, 사과 같은 가을 재료를 활용한 전과 팬케이크를 완성했답니다. 된장과 유자청, 꿀을 섞은 된장소스가 현장에서 엄청난 반응을 얻었던 기억이 나요. “이런 소스라면 밀양에 살아야겠는데요?”라는 벗님의 말에 웃음이 빵 터지기도 했답니다.
❸ 밀양 분식
분식이라는 컨셉에 맞게 여러 음식을 선보였던 3조의 플레이트는 과연 역대급 풍성함이었어요. 벗님이 집에서 따로 만들어오신 사과젤리와 사과샤베트, 분식 스타일 제대로 살린 가래떡볶이와 채소/버섯 튀김, 달콤한 간장소스를 머금은 표고버섯조림까지. 특히나 버섯조림은 채소 모양 하나하나 다듬어서 요리 시작부터 끝까지 졸였던 거라 그런지, 더더욱 정성과 노력이 담긴 맛이 났어요.
❹ 밀양의 숨결
4조는 색다른 시도를 했습니다. 구배기 된장과 올리브오일을 섞은 드레싱으로 월남쌈을 준비하고, 화도쌀로 젤라또를 만들었어요! 특별한 재료로 만든 색다른 조합은 새로운 미식의 즐거움으로 다가왔답니다. 특히나 쌀 젤라또, 된장드레싱이 정말 맛있었어요.
로컬 플레이트 나누기 - 다같이 먹어요!
11월 8일 열린 졸업식과 졸업 전시는 지난 세 달 간의 생태미식 여정을 마무리하는 자리이자, 로컬 플레이트를 선보이는 순간이었어요. 전시장에는 우리가 농가에서 만났던 다랑협동조합의 토종쌀 3종과 구배기된장에서 직접 만든 집장·된장, 깻잎·사과·대추 등, 밀양의 맛과 감각을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식재료들을 함께 전시했습니다.
‘교환학생 시간’은 다른 학과 벗님들과 만나는 반가운 시간이었어요. 다양한 토종 씨앗의 이름과 특성을 알아보며 토종 씨앗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생태미식학과 전시를 함께 구경하며, 지난 3개월 동안 만났던 식재료와 그 너머에 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교환학생 시간이 끝나고, 생태미식학과 벗님들이 다시 옹기종기 모였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든 로컬 플레이트를 다른 학과의 벗님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몇 가지 메뉴를 그 자리에서 직접 만들어 함께 맛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뻥튀기 그릇에 조심조심 4가지 음식을 담으니, 귀엽고 재미있는 플레이트가 완성되었어요! 벗님들은 신기한 듯 다가와 메뉴 이름을 묻고, 어떤 식재료가 들어갔는지 하나씩 궁금해하셨답니다. 무엇보다 맛있었어요! 호기심에서 탄성으로 이어지는 현장의 반응을 보면서, 3개월 동안 고민하고 배워온 생태미식의 여정이 누군가에게 닿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을 반쯤 농담 삼아 얘기하시던 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우리가 생태미식을 조금씩 배우고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과 행동이
혼자서는 쉽게 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어느 벗님께서 후기로 남겨주신 이 문장을 읽는데, 유독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그러게요. 저희 벗밭도 지속가능한 식사를 이야기하지만 이 단어만으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늘 생각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현장으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농가에서 만나는 생산자의 얼굴을 뵙고, 이야기를 듣고, 부엌에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보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이론보다 누군가의 말과 공간의 냄새, 손의 온도가 더 많은 것을 설명해주는 순간들이 쌓여갔습니다.
그때 새삼 느꼈습니다. ‘지속가능한 식사’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이야기를 기억하고, 그 삶을 나의 식탁 위로 초대하는 일이라는 것을요.
한 번의 식사로 세상이 달라지진 않지만, 그 식사를 함께한 사람의 마음은 분명 달라집니다. 채소를 고르고, 손으로 다듬고, 제철의 시간에 맞춰 요리하는 일. 그 단순한 행위들이 모여 결국은 생태를 지키고,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의 언어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벗밭이 하고 싶은 일도 결국 그 한 가지 같습니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시작된 작고 다정한 실천이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흔들고, 또 다른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것. 우리가 밥을 짓고, 요리를 나누고, 플레이트를 함께 만들며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결국 그 ‘연결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의 식탁이 세상의 식탁과 이어져 있다는 믿음, 그 믿음과 여러분과의 시간을 기억한다면 저는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생태미식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4가지의 플레이트가 만들어지기까지, 곁에서 함께 보고 응원할 수 있어 정말 감사했습니다.
글 | 벗밭
사진 | 벗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