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토종씨앗모임은 2025년 5월부터 7월까지, 책과 탐방을 통해 토종씨앗을 배웠습니다. 앞으로는 직접 토종씨앗을 심고 거두어보고, 밀양의 토종씨앗을 우리의 손으로 찾아보고 싶다는 다짐이 생겼다고 하는데요. 십수년을 살아도 ‘토종’이기 어려운 밀양에서 토종에 대해 같이 고민할 동료를 만나 즐거웠다는, 밀양토종씨앗모임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5.06.03. 모임원 텃밭 탐방
밀양에는 환경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가치클럽이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오고 가며, ‘와랑마켓’에서 열린 토종씨앗 나눔 부스를 통해 환경과 농업에 관심 있는 여성 다섯 명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단지 “토종씨앗이 뭘까?” 하는 가벼운 호기심에서 시작됐습니다. 함께 공부하고, 함께 심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었죠. 각자 작은 텃밭을 가꿔본 경험은 있었지만, 씨앗에 대해 다른 이들과 이야기 나눈 적은 거의 없었기에 더욱 설렜습니다.
25.06.16. 《누구도 토종을 지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책 읽고 이야기 나누기
하지만 우리 모두 ‘초보’였기에, 우선 토종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배워보자는 뜻을 모아 책 두 권을 함께 읽기로 했습니다. 바로 《토종씨앗의 역습》, 그리고 《누구도 토종을 지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입니다. 두 책은 서로 분위기가 전혀 달랐지만, 토종씨앗에 대해 입문자로서 읽기에 참 좋은 책이었습니다.
《토종씨앗의 역습》은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토종’이라는 개념을 짚어주며, 왜 토종이 우리 곁에서 점점 사라졌는지를 다양한 이야기로 들려줍니다. 그리고 《누구도 토종을 지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씨앗, 사람, 지역의 문화가 엮이며 펼쳐집니다. 읽다 보면 저자의 삶 자체가 궁금해질 만큼 매력적이었죠. 결국 우리는 장맛비가 전국을 뒤덮던 날, 그 저자를 만나기 위해 충남 예산에 있는 한국토종씨앗박물관까지 떠나게 되었습니다.
25.07.17. 공주 <곡물집> 방문 (1)
25.07.17. 공주 <곡물집> 방문 (2)
예산에 가는 길, 먼저 들른 곳은 <곡물집>이라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곳은 주체적으로 삶을 일구는 농부들이 지키고 있는 ‘토종 곡물’을 판매하고, 그 곡물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를 선보이는 곳입니다. 정갈하면서도 따뜻한 공간에서 우리는 먹고, 보고, 느끼며 큰 즐거움을 누렸고, 언젠가 우리 지역에도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게 됐습니다.
25.07.17. 예산 <한국토종씨앗박물관> 방문 (1)
25.07.17. 예산 <한국토종씨앗박물관> 방문 (2)
비가 쏟아지는 도로를 달려 도착한 한국토종씨앗박물관에서는 강희진 관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작은 공간 가득히 진열된 씨앗들을 보고 있자니 놀랍고, 동시에 어딘가 모르게 정겨운 기분이 들었습니다. 같은 품종의 씨앗이더라도 각기 다른 지역 이름이 세세하게 붙어 있는 걸 보며, 책에서 읽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떠올랐습니다. 그 씨앗들은 오랜 시간 다양한 위협 속에서도 살아남아 지역에 뿌리내렸고, 지금 이곳에 사는 우리와도 꼭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희진 관장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유명하고 좋다고 알려진 토종씨앗을 받아 심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살아남은 씨앗을 찾아 그것을 키우고 나누는 일이야말로 진짜 토종씨앗 모임의 정체성일 것이다."
그 말에, 우리는 곡물집에서 샀던 씨앗 몇 가지가 떠오르며 조금은 부끄러워졌습니다.
이제 밀양에서, 밀양만의 씨앗을 만나보자는 다짐이 생겼습니다.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빗소리에 발걸음을 돌려 밀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도 우리는 “오길 정말 잘했다”며 서로를 고마워했습니다. 함께 하자고 말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이 여정은 든든하고 따뜻했습니다. 비록 이번 여정으로 우리의 작은 동아리 활동은 일단락되지만, 그 안에서 만난 이야기들과 사람들, 그리고 씨앗들이 우리 안에 오래 남을 거라 믿습니다.
아직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은 많지만, 그 길을 함께 시작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었을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더 많아졌지만, 조금 더 분명해진 길 위에,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길 바랍니다.
글·사진 | 밀양토종씨앗모임 (곽빛나, 배정희, 전한이, 조인숙, 주혜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