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강_시간을 교환하는 공동체 실험
여름이니까, 밀양ON에서 만나!
날씨 때문에, 휴가 때문에, 지역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만나기 어려워도, 우리의 연결을 막을 수 없다!
여름을 맞이하며, 2025 밀양은대학 온라인 계절학기 ‘밀양ON아카데미’가 열렸습니다.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 동안 총 6회의 온라인 강의를 준비했는데요.
7월에도 깊이 있는 이야기와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가득했습니다.
다양한 세대가 서로 돌보는 공동체 만들기
‘연결하는 기획’ 두 번째 연사는 타임뱅크코리아의 손서락 대표입니다.
손서락 대표는 사회복지 현장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경험에 더해, 요즘은 ‘모두의 1시간은 동일하다’를 외치며 시간 교환을 실험하고 있어요.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포방터 시장은 바로 그 실험의 현장이고요.
포방터 시장은 서울에서도 아주 구석에 위치한 오래된 시장입니다. 개발예정지여서 건물이나 도로가 낡고, 좁고, 심지어 경사가 가파르고요. 이 곳에서 3년 전부터 동네에서 존재감이 없던 사람들이 슬렁슬렁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러다보니 서로 돌보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렇게 연결되고 연대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복지체계에서 다루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보완하기까지 합니다.
어떻게 존재감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돌봄과 연대까지 나아가게 되는 걸까요?
여기엔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지금부터 하나씩 파헤쳐보도록 하겠습니다.
❶ 우리가 서로 돌본다는 것은 내 쓸모를 찾아가는 일
내가 ‘쓸모 없다’고 느낀 적이 있나요?
미국에서 오랫동안 흑인, 원주민 등 소수자를 위해 헌신한 인권 변호사 에드거 칸 박사는 갑자기 찾아온 심장 병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됩니다. 수십 년 동안 종횡무진하며 활동하다가 하루 아침에 환자가 되어보니, 가만히 누워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면서 ‘쓸모 없음’의 감각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활동해오던 현장의 사람들을 떠올렸다고 해요. 사람은 누구나 존재하고 관계맺는 사이에서 크던 작던 쓸모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기존의 시장경제에서는 그러한 행위에 대해 가치를 측정하고 보상하고 있지 않다는 거죠.
그렇게 2000년에 저서 <이제 쓸모없는 사람은 없다>를 출간하며, 세상에 타임뱅크를 제안합니다.
타임뱅크는 기존 시장경제에서 보상해주지 않는 가치에 대해 시간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예를 들어 동네 골목길을 청소하는 1시간과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를 관찰하는 1시간, 이웃에게 나누어줄 반찬을 만드는 1시간이 모두 동일한 것이죠. 내가 너를 돕고, 네가 또 다른 사람을 돕고, 그 다른 사람이 나를 돕는 구조인 거예요. 이런 구조에서는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수행하며, 점차 쓸모 있는 사람이 됩니다.
❷ 연결은 의외의 순간에 이루어진다
타임뱅크하우스는 포방터 시장에서 접근성이 좋은 곳에 공간을 마련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관찰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모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동네에 경로당이나 복지관같은 시설이 부족했거든요.
사람들이 찾아오면 손서락 대표는 그 사람이 가진 ‘자산’을 찾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산은 돈이나 명품이 아닌 그 사람의 ‘쓸모’입니다. 누구나 잘 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손서락 대표는 여기에서 문제가 아닌 자산을 찾는 관점을 강조합니다. 실제로 타임뱅크하우스에는 약 250여 명의 회윈이 있는데요. 이 중에는 지적장애를 가진 청년, 은퇴한 어르신, 1인가구 중장년, 우울증을 가진 사람, 은둔 고립 청(소)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사진출처 : 타임뱅크코리아 네이버블로그, 발달장애청년들과 함께 하는 연극모임)
손서락 대표는 지난 3년의 실험에서 사소한 순간마다 놀라운 경험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전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의 연결고리를 통해 상처를 보듬고 극복하는 경험들을요. 예를 들면,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꺼리고 종이에 메모해서 필담으로만 대화하는 청년이 있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지적장애와 학교폭력 피해 경험이 있었던 거죠. 그런데 타임뱅크코리아에서 만난 할머니는 이 청년에게 (사실 한글을 읽을 줄 알지만) ‘나는 한글을 읽을 줄 모르니 말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할머니에겐 장애가 있는 친인척이나 친구가 없었지만, 인생을 살면서 축적한 돌봄의 노하우가 있었던 거죠. 이후로 청년은 입이 트이게 되고, 타임뱅크코리아의 열성적인 활동가가 됩니다.
❸ 현장과 정책 사이, 주어진 과제들
동네에 커뮤니티가 작동하며, 다양한 순기능이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대부분의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 겪는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사라지고요. 알콜 등의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죠. 요즘 타임뱅크하우스는 지역의 사회복지관과도 연결되며 영향력을 더 널리 발휘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손서락 대표는 현장에서 현실적인 한계에도 마주한다고 고백합니다.
예산은 물론이고, 활동지원사나 요양보호사 같은 돌봄 서비스 노동자들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통합 돌봄 지원법’이 시행 1년을 앞두고 있는데, 현장에서 비공식적 돌봄 공동체를 운영하고 관찰한 경험을 기반으로 앞으로 시행될 공식적인 돌봄 시스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타임뱅크가 가진 가치가 더 주목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A
Q. 정부가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일수록 타임뱅크의 시스템이 빛날 것 같습니다. 오늘 강의를 듣고 본인이 속한 공동체에도 타임뱅크를 적용하고 싶은 분들도 계실 듯 한데요. 타임뱅크를 적용하고 싶은 공동체 운영자들을 위해 주의해야할 점들이 있을까요?
A. 타임뱅크의 적용 범위는 무한대입니다. 마을 공동체뿐만 아니라 직장,교회, 동창회 등 다양한 형태로 시도가 가능할 것 같거든요. 어제 제가 영국 사례를 보니까, 교도소 안에서도 재소자들끼리 서로 멘토링해주고 멘토링 받는 형태로 진행하기도 하더라고요. 타임뱅크가 시작되는 모양이나 현장에 대한 상상력은 한계가 없다고 보기 때문에 다양하게 시도해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그렇지만 저는 재미있게 하시라고 강조드리고 싶어요. 처음부터 사회 취약계층을 중심에 두고, 거기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다 보면 보편성이나 확장성에 좀 한계를 느낄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가급적이면 재미있게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안에서 끊임없이 열린 공간 그리고 열린 대상으로 넘어가도록 진행하는 게 함께 가야할 것 같습니다.
Q. 신자유주의 이후 모든 것이 ‘일자리’화되고, 사람 구하기가 어렵지 않느냐는 말에 격하게 공감이 됩니다. 타임뱅크의 한 시간은 변호사나 장애인이나 동일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함께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이에 대해 현실적인 어려움이나 애로사항은 없을지 궁금합니다.
A. 한 번도 그걸 설득해 보지는 않았어요. 강연을 가면 이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하시기는 하죠. 왜냐하면 타임뱅크 안에서 돌봄이라는 게, 도움 주고받는다는 게 굉장히 사소한 거거든요. 아주 전문적인 지식을 가르치거나 그런 건 없어요. 탁구 가르쳐주고, 위내시경 환자 병원갈 때 동행해 주고, 한글 모르는 친구 한글 가르쳐주고, 구구단 가르쳐주고 그런 것들이거든요. 그런 거에 대해서 품질이나 가치를 주장하는 경우는 없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는 있습니다.
근데 어쨌든 시장 경제 안에서는 분명히 차이가 있죠. 변호사의 연봉이나 돌봄 노동자 그리고 장애인의 한 시간의 가치는 너무나 차이가 있지만, 사실 우리 경제라는 게 돈만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잖아요. 돈을 주고받지 않더라도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습니까? 아까 구구단 가르치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시장 가치로 장애청년이 구구단을 가르치는 데에 한 시간에 얼마를 주겠어요? 5천원도 안 줄걸요? 그렇지만 그 친구는 사실 더 엄청난 일을 해낸 거잖아요. 1학년으로 입학할 뻔한 아이를 3학년으로 입학시키는 것은 가치를 돈으로 잴 수가 없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평등하다라고 약속하자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