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크다는 사실이 구원이 된다. 절망은 사람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우울함은 푹 꺼진 웅덩이다. 자아를 깊이 파고들어 가는 일, 그렇게 땅 밑으로 들어가는 일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자신에게서 빠져나오는 일,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가슴에 꼭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는 탁 트인 곳으로, 더 큰 세상 속으로 나가는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필요하다. 양쪽 방향 모두로 떠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며, 가끔은 밖으로 혹은 경계 너머로 나가는 일을 통해 붙잡고 있던 문제의 핵심으로 들어가는 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풍경 안으로 들어온 광활함, 이야기로부터 당신을 끄집어내는 광활함이다.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2024 밀양은대학 ‘몸으로 배우는 성평등’ 학과는 몸의 감각과 힘을 깨우는 창의적 신체활동과 놀이를 통해, 다양한 몸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으며 돌봄과 연대를 나누는 문화를 만들었던 시공간이었습니다. 젠더, 나이 등의 위계로 인한 폭력과 두려움이 만연한 사회에서 통제 되었던 몸의 접촉과 움직임을 안전하고 즐겁게 시도하며 '성평등'을 새롭게 바라보고 확장해 나갔던 시민들의 기록을 나눕니다.
* 본 글은 2024 밀양은대학 ‘몸으로 배우는 성평등’학과 참가자들의 기록을 엮어 만든 '이야기로부터 우리를 끄집어내는 몸의 광활함' 책자를 재구성하여 만들었습니다.
1부 몸과 연결되다
“가장 쉬운 일에 어렵게 어렵게 찾아왔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은 붙들고 있는 마음을 놓아주는 것. 오늘 하루 몸과 마음을 깨우며 나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했다. 편안했고 때로는 심취했다. 어지러울 정도로! 몸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 안전한 시공간을 마련하는 것의 중요함을 깨달았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게 아니라, 나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 내가 존재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맨발로 대지를 느리게 걸으며 우주의 기운을 느끼는 것.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 온 몸을 끌어안으며 체온을 느끼고 쓰다듬어 줌으로써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 가장 쉬운 일에 어렵게 어렵게 찾아왔다. 내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일.”
“몸의 느낌을 억누르는데 익숙했던 몸을 움직이면서 깨우고 감각하는 과정이 낯설었다. 하지만 즐겁기도 했다. 접촉을 통해서 가까워지고 편안해지는 감각을 잊지 않고 일상에서 표현해 보기로 결심했다.”
“발 마사지로 하루를 열며 ‘내가 언제 이렇게 나를 어루만지며 살았던가!’ 더듬어 생각해봤다. 얼굴 마사지 할 때 말고는 스스로를 정성껏 돌봐주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남 앞에 맨발을 내놓는게 조금 부끄러웠던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가리는 것 없이 맨발을 쓰담쓰담하며 나를 어여삐 여기는 따뜻한 손길이 즐겁다.”
“붙들고 있던 뼈들을 열어보려 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여냐고 뇌와 몸은 계속 반발했지만, 재밌었으니 가능성이 있겠다 싶습니다. 뻣뻣한 내 몸의 이야기를 들어주어 모두 고맙습니다.”
“나는 내 생각보다 유연하다. 나를 지지해주는 작은 손이 있을 때 더더욱 유연할 수 있다. 정형화된 몸의 패턴에서 벗어나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의지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유연한 몸의 표현을 경험했다. 지금껏 골반의 움직임, 어깨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해 보았던가. 내 몸을 통제하는 순간 내 안의 마음을 들여다 봐야겠다. 그리고 나의 주변 환경을 살펴봐야겠다.”
2부 몸이 이야기하다
“몸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고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었음을 느낀다.
몸에게 묻는다.‘어때?좋았어?’ 온 몸이 환하게 미소 지으며 ‘오롯이 자신을 사랑해 줘서,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 한다. 몸이 말한다. ‘지금까지 관심 가져 달라고, 더 보살펴 달라고 통증으로 신호를 보냈었지만 그럴 때마다 덜 움직임으로 보살피는 방식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타인의 손에 오롯이 내 몸을 맡겨 맘껏 춤을 춘 하루. “자유로운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문장을 체감했다. 내 몸의 뭉침, 풀림, 뭉침, 풀림의 반복이 인생사와 맞닿아 있음을 알고 오롯이 느껴보는 것을 즐길 수 있는 몸이 되고 싶다. 지화자 조오타~!”
“척추, 머리, 가슴, 골반을 여러 방향과 속도와 방식으로 물결치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를 권하는 환경이 꼭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한풀이 현장 같았다. 한 소리 들을 것 같은 행동은 애초에 하지 않았던 그 세월이 빚은 몸을, 그 시간을 존중하면서 움직임을 제안하라는 말에서 어떻게든 움직여봐도 괜찮겠구나, 내면의 의심 불꽃을 여기서는 꺼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자신에 대한 화를 가족에게 투사하여 표현할 때 그를 진정시키고자 하는 나는 몸짓 언어였던 미소. 부모님 사이에서 평화롭기를 바랐던 나의 마음이 표정과 몸짓으로 익숙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인상이 좋다, 친절하다’는 말을 듣지만 이는 내 마음 속 수치심을 감추고 싶은 변신의 몸짓이었으리라.
요즘은 누군가 말을 할 때 꼭 눈을 맞추지 않아도 편안함을 느낀다. 눈은 하늘을 향해 있고, 감고 있어도 상대방에 대한 존중하는 마음이 없거나 이야기를 흘려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 스스로가 안다. 내 몸은 지혜로웠고, 지금도 지혜롭고, 앞으로도 지혜로울 것임을 믿는다.”
“몸은 생각보다 많은 말을 하고 다양한 언어를 갖고 있었음을 느낀다. ‘편하다, 아프다, 노곤하다, 힘이 난다, 피곤하다’ 밖에 몰랐던 몸의 말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해방감. 뭉클함, 찌릿한 찡함, 뜨거워지는 눈시울. 움직이고 싶었던 몸이 움직이자 몸이 말했다. “의식할 필요 없잖아” “어떤 몸짓이든 그 움직임은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이기에 아무도 상관하지 않잖아” “네가 원할 때 네가 움직이기만 하면 돼” “공간은 언제나 준비되어있고, 너의 움직임을 포용해줄거야” 오늘은 또 다른 내 몸이 해방을 맞이한 광복의 날이다!”
3부 이야기가 연결되다
다시 한번 환기 해야 할 것은 몸의 시간성을 품는 춤의 이해다. 삶의 굽이굽이를 품고 있는 몸이 스스로 말하게 하는 것은 나이 들어 가는 몸, 죽음을 향해 가면서 현재의 삶을 충만하게 살아내는 몸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관점을 요청한다. 늙어 가는/늙은 사람에게 '여전히' 젊고 아름다울 것, '아직도' 늙지 않은 몸과 삶을 요구하는 자본주의-연령주의-미 산업의 음험한 책략은 여성들의 삶을 왜곡하고, 자기 흥에 몸을 싣고 마음껏 늙어 갈 기회를 박탈한다.
... 제발 노년으로, 뚱뚱하고 처진 몸으로 '분장하는 게' 아니라 뚱뚱하고 처진 몸'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맘껏 춤추시라! ... 춤꾼들이여, 늙어가는 여성들이여, 모두 함께 춤바람 나서 해방의 삶-춤을 추자. 여성의 몸을 가두고 관리했던 규범과 관습의 코르셋을 여유만만 해학으로 부수며 몸이 품고 있는 미메시스의 변형적 힘을 통쾌하게 분출하자.
이제 강제된 '따라 하기'가 아닌 창조적 '서로 닮기'로 해방적 의미들을 탄생시키자.
김영옥, <흰머리 휘날리며 : 예순 이후 페미니즘>
언어는 우리를 잇지만 침묵은 우리를 나누어,
말이 호소하거나 끌어낼 수 있는 도움, 연대, 그도 아니면 단순한 교감조차 잃은 처지로 내몬다. 어떤 나무 종들은 땅속에서 뿌리를 넓게 뻗음으로써 낱낱의 그루터기들을 하나로 잇고
개개의 나무들을 좀더 안정된 덩어리로 엮어 바람에 쉬이 쓰러지지 않도록 한다.
이야기와 대화는 그 뿌리와 같다.
리베카 솔닛,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