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X디자인 : 디자인으로 감각하는 연결
이재옥 스승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 디지털미디어연구소 마루)
11월 초입의 풋풋한 입학식이 지나고, 그동안 두 번의 수업을 거친 ‘밀양은대학’은 가을의 막바지에 이르러 네 번째 수업으로 찾아왔습니다. 바로 <연결X디자인 : 디자인으로 감각하는 연결>인데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디지털미디어연구소 마루이신 이재옥 스승님과 함께한 디자인 교실, 이곳에서는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요? 지금 바로 그 현장으로 함께 찾아가 보아요!
“어서오세요! 이쪽입니다,” 활기차고 따뜻한 웰커밍
겨울바람이 콧속을 한껏 채우는 어느 늦가을 날, 총총거리는 들뜬 발걸음으로 학생들이 하나 둘 교실을 채우기 시작합니다. 혹시나 학생들이 길을 헤매지 않을까 미리 마중 나온 코치님들이 학교 방향을 알려주기도 하셨지요.
교실을 들어와서 고개를 돌리면 학생들을 맞이하는 웰컴 선물이 기다리고 있어요. 먼저 학생들을 반기는 화사한 꽃들이 보이고요. 냄비에 화르르 덥혀진 뱅쇼와 이제 막 우려진 차가 학생들의 얼은 몸을 녹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코치님들의 사랑이 듬뿍 담긴 수제 핑거푸드들까지 몇 조각 맛보고 나면 비로소 연결학교에 머무를 준비가 끝난답니다. (웃음)
학생들은 이 웰컴 선물들을 즐기며 테이블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또 새로 도착한 동료 학생들을 맞이해주기도 했습니다.
오늘의 교수님,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의 이재옥 스승님
시작부터 화기애애했던 분위기에 이어 드디어 연결학교 네 번째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짝짝짝) 이번 회차는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에서 디지털미디어연구소 소장(마루)을 맡고 계신 이재옥 스승님께서 진행해주셨는데요.
수업은 먼저 1교시에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에 대한 소개를 듣는 강의가 있었고, 뒤이은 2교시에는 디자인을 주제로 창작 활동을 하는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그럼 바로 1교시 강의 현장부터 만나러 가보실까요?
1교시.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PaTI)를 소개합니다!
먼저 강의 현장부터 둘러볼게요.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강의해주시는 스승님의 모습이 보이죠?
이날 저희가 강의에서 만나본 파주타이포그래피학교는 기존 근대교육의 정형성을 뒤로하고 새로운 배움의 철학을 토대로 창의적인 시도들을 해나가는 역동적인 예술학교였어요. 스승님께서는 해주신 학교에 대한 설명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디자인을 배우는 과정 자체도 좀 더 창의적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PaTI의 모든 배움 과정에는 ‘어떻게 하면 그런 것들을 창의적으로 배우거나 가르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창의적으로 디자인을 배운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에 대한 궁금증이 들던 때에 마침 이런 설명도 덧붙여주셨습니다.
“워낙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그냥 그렇게 해야 되는 걸로 알고 학교를 다니게 되잖아요. 모든 것이 책상, 의자 다 내가 생각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여지는 아무것도 없고 몸만 갔다가 나오고. 근데 PaTI는 그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이 처음 들어오면 자기 책상 만드는 것부터 시작을 해요. 4년 동안 자신이 쓸 책상을 직접 디자인해서 만드는 거죠.”
배움에 있어 책상과 의자는 어떻게 보면 가장 당연하고 기본적인 세팅이죠. 그런데 입학하자마자 그것부터 생각해서 손수 만들게 하는 PaTI의 교육방식은 기존 정형적 틀에 굳어있던 우리의 몸과 마음을 깨우는 것 같습니다.
재옥 스승님의 강의가 끝나자 펀지 코치님은 이런 설명을 덧붙여주셨어요.
“제가 파주타이포그라피학교를 디자인 관련으로 소개 드리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저희 연결학교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존에 있었던 학교가 아니라 그 지역 안에서 우리가 만들고 싶은 학교를 함께 상상하면서 계속적으로 진화해가고 있잖아요. 이번에 PaTI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들으며 우리는 앞으로 어떤 학교를 만들어 갈지 함께 상상해 보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요청드렸습니다.”
이 시간 동안 연결학교 코치님들과 학생들은 어떤 상상을 했을까요? 미래의 연결학교에 대해 우리도 함께 상상해보며 다음 교시로 장면을 넘겨 보아요!
2교시. 이제, 직접 손을 움직이며 사람들과 연결되어 볼까요?
본격적으로 2교시에 돌입하기 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숨 고르기를 했는데요. 따뜻한 뱅쇼를 다시 채우는 학생들도 있었고, 이전 강의의 열기가 이어져 스승님께 따로 찾아와 질문하는 학생들도 있었답니다.
잠깐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이번 교시에는 학생들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해보는 워크숍이 펼쳐졌는데요. 이번 창작 활동은 총 3가지로 이루어졌습니다.
만지는 글자 : 한글 한 글자로 하는 타이포그라피
먼저 첫 번째 활동은 타이포그라피였는데요. 이 워크숍은 실제로 PaTI에서 최문경.켈리 스승이 진행하시는 ‘실험타이포그라피’ 수업과 같습니다.
재옥 스승님께서는 수업 중 활동에 대한 소개로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글자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는 게 PaTI에서 되게 중요하거든요. 그 이유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먼저 디자인됐다고 말할 수 있는 게 ‘글자’일 거예요. 그랬을 때 글자를 다루는 생각과 태도, 그리고 그거에 대한 디자인적인 사고. 이것이 깊이 잘 되어 있으면 정말 디자인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디자인을 배운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굉장히 잘할 수 있을 거다’라는 게 PaTI 생각이에요.”
이러한 PaTI의 철학에 따라 이번 타이포그라피 활동에서는 학생들이 직접 글자를 만져보고 온전히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방법은 어렵지 않았는데요. 위의 여러 글자 중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을 하나 고르고, 그 글자를 쪼갤 방향을 한 가지로 정해줍니다. 그런 뒤, 정한 방향에 따라 종이판에 선을 자유롭게 긋고 선을 따라 종이를 자르면 준비가 완료됩니다. 그러고 나면 만들어진 글자 조각들의 간격과 높이를 조정해 보며 새로운 글자를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결과물인데요. 항상 보던 글자가 정말 낯설게 보이지 않나요? 저마다 만든 글자의 분위기에서도 각 사람의 고유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1차 타이포그라피를 마치고 나면 이제 2차 타이포그라피로 돌입하는데요. 기존 방식에서는 선을 긋는 방향과 간격을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면, 이번에는 글자 조각의 모양을 내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도록 다른 방식을 취합니다. 바로 종이를 접어서 모양을 내는 것인데요. 종이를 접어서 나오는 모양대로 글자를 해체해야 하기에 머릿속으로 결과를 의도할 수 없는 예측불가의 재미가 있었답니다. (웃음)
활동을 마치자 스승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우리가 이걸 만들 때 ‘오른쪽으로 조각을 옮기고’ 이걸 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다음에 하지 않잖아요. 그때그때 몸 움직여서 바로 즉흥적으로 하죠. 그리고 지금 하신 작업들이 아마 하기 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들일 거예요. 아주 간단한 것들도 사실은 내가 직접 하기 전에 예상할 수 없는 부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꼭 이런 글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도 어떤 것을 할 때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획을 다 세운 다음에 그대로 뭐가 진행되는 게 아니라 대략적인 나의 생각이 있고 그것에 필요한 과정을 그때그때 하면서 ‘하는 동시에 만들어지는 것들.’ 그게 사실은 더 많은 것 같더라고요.”
머릿속에 다 생각해놓기 전에 일단 몸을 움직이며 시도해 보는 것. 새로운 것을 대할 때 모든 변수와 상황을 나의 사고 속에 그리기 전에 즉흥적으로 부딪히면서 만들어가는 경험을 이 활동을 통해 해보게 된 것 같아요.
만지는 생각 : 찰흙으로 추상적인 단어 표현해 보기
앞 순서에서는 이렇게 글자를 통해 PaTI의 디자인 철학을 배웠다면, 이번 활동에서는 찰흙을 만지며 추상적 의미를 손으로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이 워크숍은 재옥 스승님이 PaTI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생각하는 손'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밀양은 대학’ 학생들이 적었던 글과 연계해서 만드신 프로그램이고요. 앞 순서의 타이포그라피는 개인 활동이었다면, 이번에는 조별로 하나의 그라운드를 사용하며 조원들과 같이 만들 여지가 있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럼 이제 생각을 만지는 방법에 대해 바로 소개해 드릴게요! 아래 사진을 보면 스승님이 들고 계신 종이에 여러 단어들이 적혀 있는데요. ‘새로움,’ ‘넓음,’ ‘연결’ 등 모두 추상적인 단어들입니다.
조별로 저 종이를 받으면 조원들이 릴레이로 돌아가면서 단어를 하나 선택한 다음 찰흙으로 그 의미를 표현하는 데요. 그렇게 만든 창작물을 책상 위의 그라운드에 배치하고, 단어의 이름을 그 옆에 쓴 다음, 이 단어에 이 모양이 떠오른 이유를 설명하면 됩니다.
작품을 만들 때 재밌는 점은 그냥 단어를 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도 되고, 그라운드에 놓인 이전 작품들을 참고해서 그것들 위에 쌓거나 잇는 등 다른 학생들의 작품들과 자유롭게 연결해서 만들어도 된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어느새 조별로 색다른 작품들이 탄생되어 있답니다.
이 활동을 하면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을 어떻게 형태로 만들 수 있을지 찰흙을 만져보며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는데요. 스승님께서는 추상적인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떨 때는 말에 갇히거든요. 그리고 또 어떨 때는 표현하고 싶은 게 있는데 적절한 말을 모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럴 때 이렇게 만질 수 있는 것, 보일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면 도움이 되게 많이 되거든요. 내가 생각을 더 키우거나 생각을 내 스스로 알 수 있게 되는데 훨씬 와닿게 느껴져요.”
예측하지 말고 시도해 보기 : 털실로 파트너 얼굴 한 실 그리기
마지막 활동으로는 털실을 가지고 파트너의 얼굴을 이어 그리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PaTI에서 오요베 카츠히토 스승이 신입생 워크숍에서 하셨던 프로그램입니다. 보통 누구의 얼굴을 그린다고 하면 내가 그 사람의 얼굴을 관찰해서 바로 종이에 선을 긋는 방식을 떠올릴 텐데요. 여기에서는 다른 그림 방식을 취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털실을 바닥의 종이에 떨어뜨려가며 선이 이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실과 나, 종이는 중력과 손끝 사이에서 하나로 이어지죠.
그리고 또 하나 이어지는 게 있습니다. 바로 파트너와의 호흡이에요. 서로의 얼굴을 그려야 하는데, 내 그림에만 집중하다 보면 상대방이 내 얼굴을 볼 수 없어요. 결국 각자 자신의 손으로 그림을 만들지만, 서로 템포를 맞추고 호흡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죠! 멋지지 않나요?
한 실 그리기의 방법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우선 저마다 1:1로 짝을 이루고 파트너와 마주 보고 섭니다. 그때 각자의 바닥을 보면 종이와 털실 뭉치가 놓여 있을 텐데요. 실뭉치에서 뽑은 실 한 가닥을 허리를 숙여 종이에 닿게 하고, 그 최초의 점을 이어 중력을 이용해서 실을 떨어뜨립니다. 끝까지 종이 위에 손을 대면 안 되고 철저하게 중력만 이용해서 몸의 여러 근육을 움직이며 파트너의 모습을 표현해 주면 됩니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은 서로의 모습을 담기에 충분한데요. 여기 서로의 얼굴을 그린 파트너들이 자신의 얼굴 옆에 누워있네요. (웃음)
이번 활동이 끝나면서도 스승님의 한 마디가 있었는데요. 배움에 대한 태도와 다양한 시도의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어요.
“보통 그림이나 디자인에 대해서 얘기할 때 우리가 잘 그리고 못 그리고 그런 식으로 배우거든요. 근데 사실 방금 이 한 실 그리기를 했을 때를 생각하면 우리가 처음에 예측하지 않았던 아름다움들이나 재미들, 창의적인 순간들이 많이 나왔잖아요. 배움은 그런 절대적인 평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연결학교에서 앞으로 활동을 해나가실 때 이런 것을 떠올려보면서 여러 시도를 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웃트로. 디자인으로 배운 연결의 태도
그렇게 2교시가 끝나고 마지막 피날레로 이재옥 스승님과 코치님들, 학생들은 모두 한 데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 사람들에게서 그날의 즐겁고 활기찬 느낌이 전해오는 것 같지 않나요?
“’creative’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경우에 되게 특별한 것을 떠올리는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오늘 우리가 한 것이 creative의 과정인 것 같아요. 뭔가를 하면서 그 상황 안에서 저절로 나오게 되잖아요. 그리고 내가 계획한 게 아니라 과정 안에서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들을 내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힘이 굉장히 필요한 것 같아요.”
스승님께서는 수업 말미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요. 이처럼 과정 안에서 새로운 변수들에 대응하며 유연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크리에이티브의 중요한 토대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연결’의 토대로도 작용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과 환경에 몸을 맡기고 예측하지 못한 변수에 시시각각 대처하겠다는 유연한 마음 없이는 외부의 무언가와 진정으로 연결될 수 없으니까요.
그런 만큼 이번 회차에서 배운 (마음과 몸의 연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잠시 내려놓고 일단 몸을 움직여 보려는 용기, (사람들과의 연결) 나뿐 아니라 나의 조원들과 파트너와 연결되어 함께 호흡하며 만들어가는 협력의 감각은 앞으로의 연결학교를 꾸려가는 데 있어 좋은 자산이 될 것 같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집에 돌아가며 연결학교에 남겨준 말들이 있는데요. 학생들의 수업의 소감을 살짝 엿보며 우리도 하교할 준비를 해보아요!
“고민하지 말고 표현해 볼 것! ‘나의 고유한 가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고민만 하지 말고 손으로 만들어 보자,’ ‘무엇이든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스스로 정답을 만들지 말고 더 상상하고 생각하고 해보기 :)”
“머릿속으로 미리 생각하지 말고 무엇이든 시도하면 상상하지 못했던 감정이 생긴다.”
“활동하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발견들이 있어 재밌었고 잊고 있던 감각을 느껴 두근거렸다.”
이제 다음 포스팅은 눈 오는 겨울에 찾아오겠네요. 곧 겨울의 연결학교에서 뵈어요!